2006년 11월 19일 일요일

[퍼옴] 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


▣ 저자  아베 쓰카사
1951년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났다. 야마구치대학 문리학부 화학과를 졸업한 후 식료?첨가물 전문회사에서 톱 세일즈맨으로 근무하다 어느 날 자신의 가족 역시 소비자임을 깨닫고는 충격을 받아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후 각종 강연을 통해 첨가물의 위험성을 설파하고, 식품 정보 공개를 주장하는 ‘첨가물 반대 전도사’로 변신했다. 현재는 자연해염 ‘사이신노시오’ 연구기술부장, 유기농업JAS 판정원, 수질 제1종 공해방지관리원으로 일하고 있다.


프롤로그

이야기는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을 졸업한 나는 한 식품첨가물 전문 회사에 입사했다. 나의 업무는 첨가물 영업이었고, 가공식품 회사 또는 공장, 식품가게 등이 나의 거래처였다. 신입사원시절, 가장 먼저 나의 흥미를 끈 것은 첨가물의 화학기호였다. 아질산나트륨, 소르빈산 칼륨, 글리세린지방산에스테르, 파라옥시안식향산이소부틸…. 화학을 전공한 나에게 화학기호 자체는 낯설 것이 없었으나 그 용도가 사뭇 신기했다. ‘아니, 이런 물질까지 식품에 들어가나?’

처음 식품공장을 견학했을 때의 일이다. 거무튀튀하고 썩은 듯 흐물흐물한 명란젓, 이것이 첨가물 수조에서 하룻밤만 지내면 갓난아기 피부처럼 뽀얗고 탱탱한 고급품으로 탈바꿈한다. 단무지는 어떤가! 허옇게 바래고 쭈글쭈글해서 도저히 먹을 것이 못돼 보이지만, 일단 첨가물통만 거치면 노란색의 맛깔스러운 단무지로 변신한다. 살짝 어보면 오독오독 소리가 나는 것이 촉감조차 일품이다. 게다가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은 놈에 비해 얼마든지 짠맛을 줄일 수 있다. ‘첨가물은 마법의 가루! 그 신통함이란…. 좋아!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거야.’ 사회 초년생인 나는 힘차게 목표를 세웠고, 목표 달성을 위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었다.

‘먼저 철저한 현장주의자가 되자.’고 현장 공부를 하다보니 어떤 식품에 어느 첨가물이 들어가는지 몸으로 익힐 수 있었다. “이 제품은 다 좋은데 말이지, 변질 문제 때문에 골치야.” 하고 한 영세업체 간부가 고민하고 있을 때면 나는 “좋은 방법이 있는데요. 프로필렌글리콜을 써보시지요. 금방 달라질 겁니다. 여기에 PH 조정제를 같이 써주면 효과가 더욱 좋아지죠.”라고 대답한다. 다짜고짜 자기 물건을 써달라며 막무가내로 매달리는 일반 영업방식과는 크게 다르다. ‘서비스의 양보다 질을!’ 이것이 내가 철저히 신봉하는 영업철학이었다.

첨 가물의 힘만 빌리면 누구든 쉽게 그럴싸한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첨가물이 있는 자리에서 ‘기술’이라는 단어는 전근대적인 의미를 갖는다. 첨가물이 내걸고 있는 ‘합리화’라는 기치가 누구에게든 수용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합리화에는 반드시 반대급부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것은 장인정신의 위기 또는 식품 기술의 붕괴로 나타났다. 첨가물의 화려한 효능은 알고 보면 기술자의 혼을 유린하는 ‘파괴자’였다. 하지만 당시에 첨가물의 신기한 효능을 모르는 기술자는 나에게 한심한 사람이었다. 그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알리는 것이 나의 사명이었고 직업이었다. 그리고 그 과업은 기대 이상으로 순항하고 있었다.

그렇게 거래처와 깊은 신뢰 관계가 형성되니 자연스럽게 신제품 개발 의뢰가 들어오곤 했다. 주요 신제품에는 거의 빠짐없이 내가 개발한 첨가물이 들어갔다. 언젠가 신규 조미료를 개발했을 때의 일이다. 농축액을 기초 원료로 만든 조미료였는데, 그것을 사용한 거래처의 신제품이 크게 히트를 쳤다. 첨가물 하나 잘 선정한 덕분에 그 회사는 대약진을 한 셈이다. 사장이 눈물을 글썽이며 이런 말까지 해서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우리 회사에 당신의 동상을 세우고 싶어요.”

첨가물이란 무엇일까. 그야말로 마법의 가루다. “식품 보존기간을 늘려주지요.” “원하는 색상을 내줍니다.” “품질을 향상시킵니다.” “맛을 좋게 하지요.” “비용을 절감시켜 줍니다.” 첨가물에 대한 신앙적인 찬사, 이것이 평소 나의 ‘첨가물관’이었다. 첨가물은 그야말로 미다스의 손이다. 그것만 있으면 기술이란 것이 무의미해진다. 공장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많은 고민거리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물론 원하는 품질은 충분히 갖춘 상태에서 말이다. 첨가물은 나의 둘도 없는 자부심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게 마련, 편리함이라는 그럴듯한 빛 뒤에는 길고 진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인체에 미치는 치명적인 해악, 이를테면 독성이 그것이었고, 나아가 우리 식탁을 붕괴시킨다는 사실도 큰 위협이었다. 1,500가지가 넘는 첨가물들을 구구단 외듯 술술 암기하고 있었던 나는 그 물질들의 위험성은 물론 사용 기준까지, 시험을 본다면 만점을 맞을 정도로 상세히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영업 현장에서 그 물질들의 그림자를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인생을 크게 뒤흔든 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 날은 큰딸의 세 번째 생일이었다. 당시 나는 회사 일에 푹 빠져 귀가 시간이 거의 매일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집에서 식사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딸아이 생일이니 그 날만큼은 일을 미루어 놓기로 했다. 일찍 마무리하고 집에 들어갔다. 식탁에는 아내가 준비한 생일 음식들이 가득했다. 그 가운데 내 시선을 끈 것은 미트볼(meatball). 미키마우스가 앙증맞게 디자인된 나뭇개비들이 하나하나 꽂혀 있었다. 식탁에 앉은 나는 무심코 미트볼 한 개를 집어 입에 넣었다. 순간 내 몸이 돌처럼 굳었다. 그 미트볼은 내가 직접 개발한 제품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100가지 정도의 첨가물을 맛으로 식별할 수 있었다.

아내는 “값도 싸구요, 애들이 굉장히 좋아해요. 이것만 꺼내놓으면 서로 먹으려고 난리예요.” 과연 딸애는 물론이고 아들놈까지 미트볼을 입 안 가득 물고 맛있다는 듯 오물오물  삼키고 있었다. “저, 저, 잠깐, 잠깐!”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가 미트볼 접시를 막았다. 돌발적인 아빠의 행동에 어리둥절해하는 가족들의 표정이란!

그 때까지만 해도 그 미트볼은 나의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그 원료육은 그냥 두면 폐기될 것이 분명했으나, 내 노력으로 인해 사랑받는 식품으로 거듭나지 않았는가. 이는 환경 측면에서도 높이 평가되어야 하거니와,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주부들의 입장에서는 더 없는 축복이었다. 게다가 내가 사용한 첨가물은 모두 나라에서 사용해도 좋다고 허가해준 것들이 아닌가! 나는 식품산업 발전에도 큰 몫을 하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귀살쩍게도 허황된 나의 영혼을 크게 꾸짖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이 미트볼을 내 자식에게만은 먹이고 싶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구나. 나도, 내 가족도 소비자의 한 사람이로구나!’ 그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그 날 밤, 나는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첨가물산업은 군수산업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첨가물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이나 무기를 팔아 돈을 버는 것이나 다른 게 무엇인가. 인명을 담보로 한다는 점에서 두 산업은 빼닮았다. 또다시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에게 그토록 신바람을 불어넣던 열정이 사그라지더니 아예 회사에 출근할 의욕마저 없어졌다. 나는 차분히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을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톱 세일즈맨이었던 만큼 나는 보수도 제법 많았다. 가장으로서 앞으로 생활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 하지만 결론은 ‘양심을 저버릴 수는 없다’였다. 이튿날 나는 회사에 사표를 냈다.

회사를 그만둔 후 나는 무첨가 명란젓을 만들기 시작했다. 막상 부딪쳐보니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결국 나의 도전은 성공을 거두었다. 무첨가 명란젓이 탄생한 것이다. 조금씩 판매도 할 수 있었다. 무첨가 제품 비즈니스를 새롭게 하면서 나는 주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첨가물에 대한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나의 첨가물 이야기는 알음알음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고, 활동반경을 넓혀나간 나는 어느덧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강연을 하기에 이르렀다. 나에게 첨가물의 실상을 고발하라는 책임이 주어진 것이 아닐까. 과거의 행적은 지운다고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겠지만, 첨가물에 대한 나의 새로운 소회를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알도록 한다면 그만큼 나의 책임은 희석되지 않을까. 나의 머릿속은 산만하기 그지없었지만 할 일은 뚜렷했다.

식품첨가물이 무차별 남용되는 가공식품들                          

내 가 첨가물 영업을 할 때 나의 가장 중요한 거래처는 육가공식품, 절임식품, 명란젓, 이 세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였다. 이 회사들은 한결같이 첨가물을 대량구입 해주는, 나에게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첨가물 사용량 기준으로 구분할 때 단연 선두 그룹에 포진하고 있는 식품들이다. 이제 도마 위에 이들 세 식품을 올리기로 하자. 이 식품들에 사용되고 있는 첨가물의 실태를 알고 나면 가공식품의 뒷모습이 비로소 보일 것이다.

업계에서 쓰는 ‘푸딩햄(pudding ham)’이라는 용어가 있다. 고기에 물을 넣어 굳힌 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고기에 물을 넣는 이유는 물론 양을 늘리기 위함이다. 햄은 주로 돼지고기로 만든다. 돼지고기 100킬로그램으로는 푸딩햄 120~130킬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여기서 늘어난 20킬로그램의 정체는? 물 먹인 햄이니까 당연히 물이다. 다만 이때 그냥 물만 넣지는 않는다. 고기와 잘 석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럴듯한 원료가 또 필요하다. 뜨거운 물에 녹여 식히면 젤리가 되는 이른바 ‘겔(gel)화제’다. 햄에 물 먹이는 방법을 살펴보자. 먼저 겔화제를 물에 녹여 젤리액을 만든다. 이 젤리액을 고기 덩어리에 주입한다. 젤리액이 주입되면 고기 전체에 균일하게 퍼지게 해야 한다. 젤리액이 20-30퍼센트 들어갔기 때문에 이 상태에서 육질을 보면 말랑말랑한 것이 마치 스펀지 같다.

다음 단계는 성형과 증숙이다. 일정 모양으로 만들어 가열하고 냉각시키면 우리 식탁에 오르는 산뜻한 햄이 된다. 겔화제의 원료는 대두 아니면 난백이다. 경우에 따라 유단백이나 해조류가 사용되기도 하는데, 물에 녹아 굳을 수만 있으면 뭐든지 쓸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첨가물이다. 엉뚱한 것으로 뻥튀기를 했으니 색을 맞추고 탄력도 줘야 하며 또 맛을 내야 한다. 용도가 한두 가지가 아닌 만큼 당연히 첨가물 범벅이 될 수밖에 없다. 원료가 뭐가 됐건 아무거나 집어넣고 굳힌, 고기 아닌 고기. 가격 경쟁에서 뒤질세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증량과 작전, 그런 현장에서는 식품기술이고 나발이고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우리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피클, 즉 절임식품이 있다. 절임식품이란 말 그대로 소금에 절여서 가공하는 식품, 대체로 전통식품들인 경우가 많다. 내가 첨가물 회사에 근무할 당시, 마침 염분의 과잉 섭취가 고혈압의 원인이 된다는 인식이 번지고 있었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이 점을 역이용하여 한탕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고 연구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이 매실절임이었다. 매실절임에는 일반적으로 매실 중량의 10~15퍼센트 가량 식염을 넣는다. 식염은 칼칼한 맛을 내주는 데다 곰팡이 발생을 억제하고 변색을 방지한다. 또 식감을 이상적으로 유지시켜 주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따라서 매실절임을 짜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식염의 눈부신 역할을 대신할 방법을 찾는 것이 절대 필요했다.

첨 가물에 맡기면 안 되는 일이 없다. 맛은 화학조미료에게, 곰팡이 억제는 소르빈산에게, 변색 방지는 산화방지제에게, 새콤한 향취는 산미료에게 각각 나누어 맡겼다. 결과는 대성공. 그런데 염분을 줄였음에도 여전히 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등장한 첨가물이 사카린, 스테비아, 감초와 같은 감미료였다. 이 첨가물들을 추가하자 비로소 짠맛이 줄어든 것으로 느껴졌다. 결국 혀가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저염 매실절임 기술은 즉각 다른 절임식품에도 적용되었다.

식탁에 오르는 명란젓은 소금과 쌀발효주에 절인 명태알을 원료로 만든다. 명태알은 단단하고 색이 좋은 제품을 고급품으로 꼽는다. 그렇다면 시중의 명란젓은 모두 고급품일까? 진물이 질질 흐르는 데다 물컹거리는 저급 명란젓. 하지만 이런 형편없는 놈도 첨가물액에 하룻밤만 담가놓으면 투명한 듯 맑고 윤이 잘잘 흐르는 고급 제품으로 둔갑한다. 감촉도 마치 갓난 아이 피부처럼 탱탱한 것이 시쳇말로 끝내준다. 무슨 마술을 보는 느낌이다.

명란젓의 원료가 되는 명태알만 보더라도 첨가물 남용 실태가 숨막힐 지경이다. 그런데 명란젓은 그보다 한술 더 뜬다. 맛을 내고 보존 기간을 늘려주어야 하니 첨가물이 더 추가될 수밖에 없다. 명란젓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은 가짓수로 치면 20종은 넘을 것이다. 명란젓에 사용되는 첨가물로는 뭐니뭐니 해도 화학조미료가 압권이다. 명란젓보다 화학조미료가 더 많이 사용되는 식품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명란젓에서 나는 깊은 맛의 정체는 바로 화학조미료였던 것이다. 우리는 이렇듯 첨가물 맛을 식품 본연의 맛으로 알고 먹고 있다. 즉, 화학조미료를 먹으며 맛있다고 열광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20가지가 넘는 첨가물이 한 식품에 들어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첨가물의 유해성 논란에서 늘 빠지지 않는 주장이 화학물질의 복합적인 섭취로 인한 문제다. 쉽게 말해 여러 유해물질이 체내에 동시에 들어왔을 때 폐해는 더 커진다는 이론이다. 여러 첨가물을 동시에 먹을 때 어떻게 될지는 충분히 검토되어 있지 않다. 이를테면 A라고 하는 첨가물이 있다고 치자. 그 물질 하나만 먹었을 때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그렇다면 A, B, C 등 여러 물질을 동시에 먹었을 때는 어떻게 될까. 그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안전성 실험에도 문제점이 있다. 독성이나 발암성 테스트를 할 때 인체에 직접 투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연히 동물 실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니, 사용량 기준도 동물 실험 결과를 보고 판단한다. 예를 들어 쥐에게 A물질 100그램을 먹이자 죽었다고 치자. 그런 경우 사람에게는 그 양의 100분의 1, 즉 1그램까지는 사용해도 좋다고 결정하는 식이다. 무릇 사람과 동물은 생리체계가 다른 법이다. 어떤 물질에 대한 분해 흡수 능력이 쥐나 사람이 같다고 보는 발상 자체가 문제다. 사람에게는 스트레스와 같은 정신적 현상이 개입되는 데다 여러 복잡한 생리반응이 수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짜로 얼룩진 부엌의 맛

우 리들 부엌의 양념통은 아무도 모르는 새에 가짜가 진짜를 밀어내고 있다. 모조품이 오늘날 조미 재료의 세계를 휘어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릇 조미료란 요리의 맛을 결정하는 기본 재료다. 그렇다면 이는 현대인의 음식문화가 뿌리째 흔들리는 중대국면에 처해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모조 간장 제조 방법을 보자. 간장의 구수한 맛은 단백질의 분해 산물인 아미노산이 만든다. 무엇이 되었든 단백질만 있으면 아미노산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단백질원으로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탈지대두다. 탈지대두는 기름을 짜고 남은 콩 찌꺼기이니 가격도 싸다. 어떤 업체에서는 조류의 깃털을 이용해서 아미노산을 만든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간장의 기초 물질은 얻을 수 있었는데, 맛이 무미건조하고 간장 고유의 색이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오리지널 제품과 흡사하게 만들 것인가. 하지만 해결책으로 첨가물이 있는 한은 식은 죽 먹기다. 우선 화학조미료인 글루타민산나트륨으로 맛을 내고 감미료로 살짝 단맛을 보탠다. 상큼한 맛을 주기 위해 산미료를 넣고 걸쭉한 느낌이 들게 하기 위해 증점제를 넣는다. 색은 캐러맬 색소로 해결하고 보존료를 넣어 보존 기간을 늘려준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자연숙성 간장을 조금 섞어주면 맛이 더욱 그럴듯해진다.

업계에서는 발효를 통해 만드는 전통 간장을 ‘대두간장’이라고 하는데 반해, 이처럼 변칙적으로 만드는 모조 간장은 ‘신개념 양조간장’이라고 부른다. 두 간장의 차이는 라벨을 보면 곧 알 수 있다. 대두간장에 표기된 원료는 콩, 밀, 식염, 오직 세가지뿐이다. 첨가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신개념 양조간장은 첨가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사실 모조 간장에는 간장이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다. ‘간장맛 조미료’ 또는 ‘간장맛 염수’와 같은 용어를 써서 정통 제품과 확실히 구별해야 마땅하다. 여성들이 좋아하는 다이아몬드를 보자. 진품은 귀한 만큼 엄청나게 비싸다. 그러나 모조품인 인공 다이아몬드는 어떤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싸다. 전혀 다른 제품이기 때문이다. ‘대두간장’과 ‘신개념 양조간장’도 그 정도의 차이가 있다.

편의점에서 팔리고 있는 각종 도시락, 그리고 면류 제품들, 여기에 붙어있는 소스들은 당연히 모조 조미료로 만든다. 냉동식품이나 각종 반찬류는 물론이고 포장된 초밥이나 낫도(일본식 청국장)에 이르기까지, 이들 식품에 딸려 있는 작은 팩에는 여지없이 간장맛 조미료가 들어 있다. 언제부턴가 가정의 조미료통을 가짜가 점해버린 세상,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음식의 왜곡된 맛을 진짜 맛으로 잘못 알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미료는 ‘음식의 혼’이다. 현대인의 식생활이 조미료로부터 붕괴되어가고 있다.

베일에 싸인 첨가물의 세계

커 피 크리머. 우리에게 ‘프림’이라는 이름으로 더 친근한 그것들은 왜 무료로 서비스되는 것일까. 평소에 우리는 당연한 듯 여기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나는 강연회 같은 곳에서 가끔 “커피 크리머를 무엇으로 만든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한다. 대부분 이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한다. 약 절반 정도가 머뭇거리다 대답을 하는데 우유 또는 생크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커피 크리머의 주원료는 유지다. 식물성유지에 물을 넣어 섞되, 밀크 제품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첨가물로 탁하게 만든다. 이것이 우리가 커피를 탈 때 습관적으로 넣는 이른바 프림의 정체다. 유지를 사용하니 우유나 생크림을 사용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싸다. 즉 무료로 서비스해도 그다지 부담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물과 기름을 섞어 탁하게 만들면 마치 우유처럼 보인다고 했는데, 이 두 물질의 특성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물과 기름을 어떻게 섞을까? 그렇다, 물과 기름은 그대로는 섞이지 않는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첨가물이다. 계면활성제의 일종인 ‘유화제’가 바로 그것. 말 그대로 이 물질을 넣으면 물과 기름의 경계가 없어져 순식간에 유화(乳化)된다. 즉 우유처럼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유화물은 색깔만 비슷할 뿐이지 우유에서 느껴지는 점성이 전혀 없다.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역시 첨가물이다. 이번에는 증점제를 넣는다. 다행히 유화제와 증점제는 일괄표시 품목이다. 따라서 이 두 물질과 동일한 목적의 첨가물들은 아무리 여러 종류를 사용한다 해도 별도로 표기할 의무가 없다.

마무리 단계에서 캐러맬색소를 넣는다. 이 색소를 넣는 이유는 갈색톤을 희미하게 비치게 함으로써 진한 우유로 만든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보존 기간을 늘리는 PH조정제를, 맛을 비슷하게 하는 향료를 넣는다. 이런 방법으로 만든 변칙 크리머, 많은 사람들이 우유로 만드는 줄 알고 있지만 실은 물과 기름과 첨가물로 만든 모조품인 것이다. 차라리 ‘밀크맛 샐러드유’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편이 낫겠다.

가짜가 판치는 오늘날, 식품 소비자에게 절실한 덕목은 의문과 문제의식이다. 의문과 문제의식을 가지면 정통 제품을 식별할 수 있는 혜안이 생긴다. 그 사실을 직시하지 않는 한 식문화는 영원히 매도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가공식품과 관련된 첨가물의 현주소는 너무나 복잡하고 또한 불투명하다. 일반 소비자로서 그 내막을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느 식품에 어떤 첨가물이 얼마만큼 또 무슨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일까. 밤과 낮이 묵묵히 이어지듯 때가 되면 여지없이 우리 입을 찾아오는 수많은 식품들. 그것들은 어떤 방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일까. 대단히 중요한 일임에는 틀림없으나 알 길이 묘연하다.

정보의 균등분배는 현대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의료 분야는 물론이고 정치, 금융 등의 세계에서는 요즘 한창 정보 공개의 목소리가 드높다. 그러나 식품업계는 어떤가. 정보 공개의 당위성이라면 식품업계라고 뒤지지 않는다. 다른 분야는 구태를 벗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건만 유독 식품업계만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왜곡되어 가는 아이들의 미각

인스턴트 라면은 ‘국민식품’이라고 불릴 정도로 우리 식생활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국민식품을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특히 라면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스프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여기서 잠시 인스턴트 라면의 이해를 돕기 위해 라면 스프를 도마 위에 올려보자. 라면이 담백한 맛이냐, 된장 맛이야, 아니면 돈골(豚骨) 맛이냐는 스프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일반 소비자들은 라면 스프가 고소한 간장이나 미림 또는 돼지뼈 국물 등을 졸여 만든 진국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라면 스프에는 그런 재료들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라면 스프는 백색가루, 즉 첨가물들을 조합하여 만든다.

라 면 스프 만드는 방법을 살펴보자. 나는 과거에 라면 스프를 직접 개발한 경험이 있다. 돈골 스프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먼저 식염을 2.5-3.5그램을 준비한다. 이 식염은 값싼 볶음염이다. 여기에 화학조미료를 넣고 돈골 농축파우더와 치킨 농축파우더 등을 소량 첨가한 ‘단백가수분해물’을 넣는다. 단백가수분해물이란 아미노산 성분을 고도로 농축하여 만든 조미료의 일종이다. 맛을 보며 계속 해서 후추와 같은 향신료를 조금씩 첨가한다. 여기에 참깨와 건파를 넣고, 산미료와 증점제를 차례로 넣는다. 산미료는 시원한 느낌을 주는 점 이외에도 국물을 더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해주며, 증점제는 걸쭉한 맛을 강화시켜준다. 이런 방법을 통해 만들어진 스프는 보시다시피 천연 국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는다. 이쯤 되면 식품이라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공업제품’이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가공식품을 먹으며 미각이 왜곡되면서 첨가물들을 남용함에 따라 식품에서 ‘정성’이란 의미가 희석되기 시작했다. 식품이란 누구든 값싸게 만들어 공급할 수 있는 것으로 전락했다. 식품은 싸구려이며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이른바 ‘정크(junk)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하는 아이들, 그들이 열어갈 미래의 식생활은 암울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먹는 것이 바로 우리다(You are what you eat)’라는 말이 있다. 인체가 고귀하듯 음식도 고귀한 것이다. 비록 식사는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지지만, 한 끼 먹을 음식을 마련하는 데는 많은 사람들의 땀이 어려 있다. 이런 사실을 자녀에게 깨닫게 하는 것도 첨가물의 유해성을 알리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정성이 담긴 음식은 자녀들의 몸뿐만이 아니고 마음까지도 건강하게 한다.

식생활의 미래를 위해

현 대인은 식단의 많은 부분을 가공식품에 의존한다. 그리고 앞으로 가공식품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첨가물에 전혀 오염되지 않은 식생활이 과연 가능할까. 식품의 독성이나 유해물질 문제는 어떻게든 극복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탁상공론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라는 점 역시 인정해야 한다. 좀 더 멀리서 ‘나무’ 보다는 ‘숲’을 본다는 마음으로 첨가물 세계를 들여다보자. 현대 사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교통사고를 줄이는 일이 절체 절명의 과제라고 해서 자동차를 없애야 할까. 첨가물 문제에도 그와 같은 역설이 존재한다.

첨가물이 무조건 추방해야 할 ‘공공의 적’은 아니다. 첨가물에도 틀림없이 이점이 있다. 오늘날 누리는 풍족한 식생활, 언제 어디를 가든 먹을 것이 넘치는 편리함, 그것은 가공식품의 발달로 얻은 혜택이다. 그리고 그 가공식품의 발달을 선도해온 수훈자는 단연 식품첨가물이다. 첨가물의 장단점을 모두 이해하는 것, 그러한 균등한 사고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유연한 사고 속에 식생활 문제에 대한 해결의 열쇠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첨가물 만능 시대를 살아가는 지침 다섯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표기 내용을 꼼꼼히 읽고 구입하는 습관이다. 대부분 가격과 디자인 또는 유통기한 정도만 보고 장바구니에 넣는다. 그러나 앞으로는 제품의 뒷면도 꼼꼼히 살펴서 첨가물 정보를 반드시 확인하자. 둘째, 가공도가 낮은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다. 첨가물 사용량은 가공의 정도와도 관계가 있다. 셋째, 먹더라도 알고 먹자. 가공 식품을 피할 수 없다면 일주일 단위로 날을 정해서 먹는 것이다.

넷째, 가격으로 판단하지 말자. 큰 식품 매장에 가보면 ‘가격파괴’라는 말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광경을 많이 본다. 흔히 유통 구조를 개선하여 비용을 대폭 줄였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가격파괴의 뒷면에는 첨가물 업자들의 술수가 숨어 있다. 질이 다소 떨어지는 재료를 쓰면서 첨가물을 넣어 맛이나 외관을 그럴듯한 제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제품들이 싼 것만 찾는 소비자에게는 더 없는 인기 품목이다. 다섯째, 사소한 의문을 갖자. 그것이 첨가물 이해의 첫걸음이다. “이 햄버거는 왜 이렇게 싸지?” “이 포장 야채는 왜 늘 싱싱한 걸까?” “커피 크리머는 어딜 가든 무료로 나누어줘. 왜 그럴까?” “명란젓 색깔이 이토록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일까?” 이렇게 일단 의문을 품으면 어떤 형태로든 정답이 주어진다. 식품과 첨가물 상식에서는 그 점이 중요하다.

최근 아이들의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현상이나 청소년 폭력이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흔히 영양 불균형, 첨가물의 과잉 섭취 등을 그 원인으로 꼽는다. 물론 영양상의 문제나 화학물질도 청소년의 정서를 해치는 요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 더 큰 다른 요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음식을 가볍게 보는 데 따른 문제다. 음식을 우습게 여기는 아이는 생명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아이는 인명의 존귀함도 망각할 수 있다. 남에게 피해를 준다든가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의 배후에는 음식 경시 사고가 있다. 음식을 귀하게 여기는 아이는 결코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만큼 식생활 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아이들은 흔히 이런 이야기를 한다. “엄마가 만든 건 맛 없어요. 편의점에서 사면 맛있는데.”라고. 이 말은 이미 첨가물 맛에 깊이 길들여져 있다는 뜻이다. 아울러 우리 식탁이 붕괴되어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식탁의 붕괴는 가정의 붕괴를 의미하고, 나아가 사회의 붕괴를 의미하며, 결국 나라의 붕괴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 식생활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요즘 아이들에게 식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무릇 음식이란 여러 과정을 거쳐 우리 입에 들어오게 마련이다. 그 속에는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어려 있다. 하다 못해 양파만 하더라도 농부가 부지런히 일해서 얻은 땀의 산물이다. 아무리 하찮은 식품이라도 결코 경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음식에 대한 고마운 마음, 소중한 마음을 갖는 일이야말로 오늘날 아이들이 하루빨리 갖추어야 할 귀한 덕목이다.

우 리 일상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큰 선택’도 있고 ‘작은 선택’도 있다. 식품 매장에서 쇼핑하는 일, 식단을 짜는 일등은 작은 선택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작은 선택’이라고 해서 함부로 판단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하다. 나 자신은 물론이고 자녀들의 미래가 걸린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소비자 각자의 ‘작은 선택’들이 모여 그릇된 식문화를 바꾸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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