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3일 월요일

[徐氏] 徐氏 유래 - 시조

시조徐晋 : 고려 때 봉익대부 판도판서 등을 역임하면서 공을 세워 달성군에 봉해지고
                   그 곳에서 대대로 살게 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이천 서씨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달성
을로 하였다.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서진(徐晋)의 출생년도는 대략 서기 1260년에서 1280년 사이로 추정되며, 부인은 초계(周)씨였다.

 달성서씨의 원조(遠祖) 서진(徐晋)은 고려시대 사람으로 벼슬은 봉익대부 판도판서(版圖判書) 달성군 이었고, 그의 아들 기준(奇俊)과 손자 영(穎)에 이르기까지 3대(代)가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다.그리하여 후손들이 달성(達城)에 세거(世居)하며 관향(貫鄕)을 달성으로 하게 되었으며, 후대로 내려와 현감공파(縣監公派: 濟) 학유공파(學諭公派: 渡) 판서 공파(判書公派: 涉)
감찰공파(監察公派:近中)진사공파(進士公派:錫蓮)생원공파(生員公派:錫蓂)
진사공파(進士公派:錫笭)참판공파(參判公派:宗一)종사랑공파(從仕郞公派 : 震)9파로 갈라져서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개요 : "정보사”에 의하면, 달성.대구서씨의 상계가 살았던 곳은 알기 어려우며, 10세 서거광의 대 이래로 파주 등지를 세천지로 삼고 있으므로 일찍이 경기지역에 정착했다고 믿어진다.
 <달성서씨>는 경북 달성군 가창면, 영일군.고령군 일원, 안동군 남후면, 상주군 사벌면, 경남 고성군 영오면, 함양군 서상면, 양산군 상북면, 밀양군 밀양읍, 창령군 창령읍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었으며,
     ☞  1960년도 국세조사에 의하면 6만 6571가구에 인구 37만 7833명으로 나와 있으며,
          1985년도 조사에서는 가구수 14만 4320 가구, 인구 61만 1148명으로 되어 있다.